물건을 버리면 공간은 비워졌지만,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방의 물건들을 하나둘 정리해 나갔다. 책을 줄이고, 무료 나눔을 통해 옷을 나누어주었다. 또한, 하루에 한 물건 버리기 활동을 진행하며 오래된 잡화와 장식들을 처분하며 공간은 점점 넓어졌다. 그 과정은 가벼웠고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리가 멈추었다. 문제는 내 것이 아닌 부모님의 물건들이었다. 내가 자란 집 안 곳곳에는 부모님이 십 수년간 간직해온 물건들, 오래된 기념품과 낡은 옷, 수명이 다한 가전제품들이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 물건들을 볼 때마다 ‘이건 정리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손을 대려 하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예의나 소유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글은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내가 부모님의 물건 앞에서 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속에 숨어 있던 감정과 기억, 그리고 가족의 의미를 천천히 되짚어본 기록이다.
부모님의 물건은 '기억'이었고, 나는 그 기억을 버릴 수 없었다
내가 부모님의 물건을 정리하지 못했던 첫 번째 이유는 단순했다. 그 물건들에는 부모님의 기억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그릇, 낡은 여행용 가방, 손때 묻은 옷걸이조차도 우리 가족의 과거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오래된 공구 상자를 보면서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책장을 만들던 장면이 떠올랐다. 또한, 어머니의 낡은 믹서기를 보면 새벽마다 나를 위해 건강 주스를 만드시던 모습이 겹쳐졌다.
나는 미니멀리즘을 통해 물건과의 거리두기를 배웠지만, 부모님의 물건 앞에서는 거리 두기가 정서적 단절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버리는 일’이 아니라, ‘기억을 지우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부모님의 연세가 점점 들어갈수록, 그 물건 하나하나가 부모님이 남긴 흔적처럼 느껴졌다. 정리하는 손길이 조심스러웠던 이유는, 그 물건들이 사라질 때마다 부모님에 대한 나의 과거도 함께 흐려질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 물건들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내 감정을 붙잡고 있는 상징이기도 했다.
물건은 부모님의 삶의 방식이자 자존심이었다
처음에는 물건을 많이 쌓아두는 부모님의 생활 습관이 답답했다. 특히 아버지는 20년 전의 카세프테이프조차 버리지 않으셨다. “이건 왜 안 버려요?”, “이건 고장 났잖아요”, “이건 10년도 넘었어요”라고 말하면, 부모님은 늘 이렇게 대답하셨다. “아직 쓸 수 있어”, “언젠가 필요할지도 몰라.”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버려야 산다’는 미니멀리즘의 논리로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물건들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니라, 부모님의 삶의 맥락과 연결된 존재였다는 것을 말이다.
부모님 세대에게 물건은 곧 노력의 결과였고, 불안한 미래를 위한 대비책이었다. 30년 전, 한 가전제품을 사기 위해 몇 달을 아껴 모아야 했던 시절을 살아온 분들에게는 물건 하나하나에 ‘내가 이만큼 살아왔다는 증거’가 담겨 있다. 그래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함부로 지우고 싶지 않아서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미니멀리즘을 ‘해방’으로 여겼지만, 부모님에겐 ‘상실’로 다가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물건을 비우기보다 부모님의 삶의 감정과 맥락을 함께 이해하려는 노력부터 하고 있다.
정리는 ‘동의’ 없이 할 수 없는 감정의 작업이었다
어느 날, 나는 어머니 몰래 오래된 냄비 세트를 정리했다. 우리 가족에게는 필요 없고, 당연히 버려도 될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어머니의 표정은 평소와 달랐다. “그거, 내가 너 어릴 때 이유식 만들던 냄비야. 왜 말을 안 하고 버렸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엄청난 후회를 느꼈다. 정리는 ‘사유’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남의 물건은 건드리지 말라.” 그 말은 단순히 소유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건에는 기억과 감정이 얽혀 있고, 그것을 건드리는 일은 곧 그 사람의 내면을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후로 부모님의 물건을 정리할 때, 무엇보다 먼저 ‘동의’와 ‘설명’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었다. 한 개의 물건을 비우는 데 몇 달이 걸리기도 했다. 어떤 물건은 결국 정리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오히려 부모님과 더 많이 대화하게 되었고 더 가까워졌다. 미니멀리즘은 빠르게 비우는 기술이 아니라, 천천히 존중하며 다가가는 방식이기도 했다.
가족의 물건을 비우는 데 필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이해’였다
미니멀리즘을 시작한 초반엔, 나는 정리 기술이나 물건 분류법에 집중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물건을 마주하면서는 그 어떤 팁보다도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비우려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함께 쌓아온 시간의 층위들이었다. 그것들을 함부로 지우는 건 나 스스로에게도 무례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물건을 버리는 대신 ‘기록하는 방식’으로 접근을 바꾸었다. 오래된 옷은 사진을 찍어 앨범에 보관했고, 낡은 가전제품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부모님께 물으며 이야기를 남겼다. 그렇게 하자 부모님도 “이젠 정리해도 괜찮겠다”라고 말해주셨다. 어느 날엔 아버지가 먼저 낡은 서류철을 정리하시기도 했다. 비움은 속도가 아니라 공감이 먼저일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일이었다. 가족의 물건을 정리한다는 건, 그 물건을 만든 시간, 감정, 애정을 함께 정리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걸 제대로 하기 위해선 기술보다 마음의 여백과 태도가 더 중요하다.
부모님의 물건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은 그 안에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부모님의 집에서 오래된 물건들을 마주한다. 그 중에는 여전히 정리하지 못한 것들도 있고, 누가 봐도 쓸모없어 보이는 물건들도 있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것들이 답답하게 느껴졌을 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물건들이 내 부모님의 삶을, 우리의 가족사를 보여주는 증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안다. 진짜 미니멀리즘은 덜어내는 데 있지 않고, 필요한 것을 남기는 데 있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물건은 나에겐 버릴 수 없는 감정이고, 기억이며, 사랑이었다. 그래서 나는 빠르게 정리하기보다 오래 기억하기를 선택한다. 미니멀리즘은 내 삶을 가볍게 해줬지만, 가족의 물건 앞에서는 가볍지 않게 마주하는 용기를 배우게 했다. 부모님의 물건을 비우지 못한 것은 정리가 서툴러서가 아니다. 이는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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