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바꿀 때마다 나는 더 복잡해졌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기분이 오히려 불편해졌다. 새로운 계절이 다가오는 설렘을 느끼기보다는 옷 정리, 신발 정리, 생활용품 교체 등 ‘해야 할 일’이 먼저 떠올랐다. 여름이 끝나면 얇은 옷을 정리하고, 겨울이 오면 이불과 패딩을 꺼내며 철마다 반복되는 옷장의 변화가 내 마음도 어지럽게 만들었다. 정리하지 않는다면 옷이 섞여 옷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서랍과 옷장은 언제나 계절에 쫓기듯 움직였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 사이에서 ‘늦은 계절’처럼 뒤처진 감정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계절 전환의 피로가 단지 물건 때문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되지 않은 건 옷이 아니라, 계절마다 떠오르는 감정과 기억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여름의 들뜸, 가을의 허전함, 겨울의 무기력함, 봄의 설렘까지— 나는 계절을 느끼기보다 계절을 견뎌내는 데에 더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계절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옷장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정돈하는 일이 되었다. 이 글에서는 옷이 아닌 감정을 중심으로 계절을 마주한 나의 미니멀리즘 경험을 기록하려 한다.
옷장을 비우자, 감정의 여백이 생겼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장을 정리하면서도 늘 피곤함을 느꼈다. ‘이 옷은 내년에 입을까?’, ‘언젠가는 입을 수도 있어’와 같은 생각에 결국 아무것도 비우지 못한 채 서랍만 다시 정리하곤 했다. 옷은 넘쳐났고, 계절별로 옮겨 담는 작업은 점점 버거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의 봄, 나는 계절별 정리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1년 내내 입을 수 있는 옷만 남기고 나머지를 정리했다. 계절을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선호도에 맞춰 옷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렇게 비운 옷장이 내 일상에 큰 여유를 만들어줬다. 무엇보다 옷을 정리하며 억지로 꺼내보게 되었던 계절 감정들이 줄어들었다. 여름 원피스를 꺼내다 떠오르던 이별의 기억, 겨울 코트를 보며 느꼈던 외로움 같은 감정들이 옷과 함께 사라졌다. 옷장은 단순히 계절을 수납하는 공간이 아니라, 나의 감정과 기억이 머무는 장소였던 것이다. 옷을 비우자 감정도 덜어졌고, 대신 나에게 지금 필요한 감정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계절용 소품보다 계절의 기분을 챙기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인테리어 소품을 바꾸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여름이면 밝은 색의 쿠션 커버와 식탁 커버를 사용하였다. 겨울에는 따뜻한 소재의 러그나 담요를 꺼냈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꼭 설치하였다. 겨울이 오기 전 가을에는 향초나 우드톤 소품을 꺼내고 무드등을 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기에 분위기 전환이 좋았다. 하지만 매번 꺼내고 넣고, 보관할 공간을 찾고, 유행이 지난 소품을 처리하는 일은 점점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소품을 바꾸는 대신 ‘계절을 느끼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여름에는 더 자주 산책을 나가 햇살을 느끼고, 가을에는 바람 소리를 음미하며 일기를 썼다. 겨울에는 음악을 바꾸고, 봄에는 책장에 꽃 한 송이를 올려두었다. 물건이 아닌 감각으로 계절을 즐기다 보니, 오히려 계절을 더 깊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계절이 꼭 시각적으로 화려해야만 느껴지는 건 아니었다. 간단하게, 그리고 조용하게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계절 소품을 비워낸 자리에, 나는 나만의 감정 루틴을 채워 넣기 시작했다.
매번 무너졌던 루틴, 계절형 감정 때문이었다
나는 계절이 바뀌면 루틴이 자주 무너지는 사람이었다. 여름이면 더워서 운동을 미루고 집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곤 했다. 겨울이면 추워서 아침 기상을 포기하고 휴대폰을 침대에서 보기만 했다. 특히 가을과 겨울에는 이유 없이 의욕이 떨어지고 무기력함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하지?’ 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곤 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나는 감정의 흐름도 계절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에너지의 고저는 나의 결함이 아니라 자연의 순환과 함께 움직이는 리듬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계절에 따라 루틴을 완전히 유지하려 하기보다, 나의 감정에 맞게 루틴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여름엔 실내 운동으로 바꾸고, 겨울엔 아침 루틴을 저녁으로 미뤘다. 일관성보다는 유연함이 필요했다.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나의 감정을 인정하자, 오히려 꾸준함은 더 잘 유지되었다. 감정이 흐르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그 흐름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남기는 것, 그것이 계절을 살고 있는 나를 지키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었다.
계절을 맞이하는 태도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했다
나는 계절을 맞이할 때마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봄에는 벚꽃놀이, 여름엔 바다와 워터파크 나들이, 가을엔 단풍 여행, 겨울엔 크리스마스 마켓—매 계절마다 해야 할 활동처럼 정해진 리스트들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 활동들을 하면서도 즐겁기보다 피로한 날이 많았다. 그 이유는 계절의 순간을 소비하며 그 순간에 사진을 찍는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느 해부터는 계절마다의 ‘계획’을 덜어내기 시작했다. 꼭 어디를 가지 않아도 좋고, 뭔가를 하지 않아도 계절은 충분히 다가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신 계절이 시작될 때마다 나는 내 마음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번 계절에 나는 어떤 감정을 더 품고 싶은가? 어떤 생각을 놓아주고 싶은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하자, 계절은 단순한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었다. 계절은 매번 같은 순서로 반복되지만, 그 계절을 살아가는 나의 감정은 매번 다르다. 미니멀리즘은 나에게 그 감정을 더 명확히 인식하게 해주었고, 옷이 아닌 감정을 갈아입는 계절의 시작을 선물해주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나는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과거의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옷, 소품, 일정, 루틴까지—그 모든 것을 갈아입느라 나 자신을 챙길 틈이 없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나는 계절을 정리하는 대신 감정을 정리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 덜어낸 건 옷과 장식품이었지만, 그 빈자리에 생긴 건 감정의 안정감이었다. 계절은 이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벤트가 아니다. 이는 감정을 다시 바라보고 나를 재정렬하는 리듬이 되었다. 나는 매 계절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은 옷장이나 수납장이 아닌, 나의 감정 공간을 정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제 나는 계절을 소비하지 않고 함께 살아간다. 계절이 바뀌어도, 나의 마음은 덜 흔들린다. 그것이 미니멀리즘이 내 삶에 준 가장 단단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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