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과 생리용품 미니멀 실천기 – 한 가지 제품만 쓰는 3개월 도전
선택의 자유가 때로 피로로 다가올 때
생리를 시작한 이후부터 나는 늘 같은 고민을 반복했다. 어떤 생리대를 사야 할지, 탐폰은 어떤 게 좋은지, 이번엔 면 생리대로 해봐야 할지에 대해서 늘 생각했다. 편한 것은 무엇이고, 안전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늘 생각했다.
선택지는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매달 생리용품을 고르는 일이 스트레스였다. 서랍 속엔 반쯤 남은 제품이 여럿 굴러다녔다. 또한, 한 달에 한 번 뿐이지만 공간은 늘 그만큼 차지했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쌓아왔던 이 작은 피로들을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생리도 단순하게 할 수 없을까?”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한 가지 생리용품으로 3개월을 살아보는 미니멀리즘 도전이었다. 선택을 줄이는 실험이자, 몸과 감정의 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그 결과는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을 바꿨다.
사실 나는 이전까지 생리는 늘 ‘피하고 싶은 불편한 시간’이라 여겼다. 또한, 가능한 한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하지만 이 도전은 생리에 대한 나의 시선부터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매달 반복되는 과잉: 생리용품 선택이 만든 피로
생리 기간이 되면 내 서랍은 작게 소란스러워졌다. 생리대, 팬티라이너, 탐폰, 면 생리대, 가끔은 생리컵까지 다양하게 구매하였다. 제품은 다양했고, 브랜드 종류는 더 많았다. ‘이게 제일 편하더라’는 말을 들으면 사보았다. 또한, 생리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것을 구매한다. 그렇게 생리용품은 한 달의 3~5일만 쓰는 것 들었지만 공간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점유하고 있었다.
특히 ‘안심’이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더 사고, 더 덧대고, 더 챙겼다. 그건 실은 ‘불안’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 모든 복잡함이 정말 필요할까? 생리라는 일상적인 경험이 왜 이리 번잡해야 할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이 질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여성으로서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라고 받아들였던 것들이었다. 그 속에는 물리적인 번잡함만이 아니라, 선택 피로와 소비 스트레스까지 함께 숨어 있었다. 이 질문이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생리 생활을 고민하게 만든 첫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이런 반복적인 선택은 내가 진짜 원하는 기준을 흐리게 만들었고, 결국 더 많은 소비로 이어지곤 했다. 진정한 필요를 구분하지 못한 채, 불안과 비교만 쌓여갔다.
한 가지로 충분할까? – 컵 하나로 시작된 도전
나는 생리컵 하나로 3개월을 살아보기로 했다. 사실 이전에도 생리컵을 몇 번 써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이것만 써보자”고 결심한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다. “외출 시 불편하지 않을까?”, “잠잘 때 샐까?”, “내 몸에 진짜 맞을까?”
하지만 미니멀리즘 실천의 핵심은 불필요한 걱정을 줄이고, 시도해보며 기준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리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오직 생리컵만 사용하겠다고 마음먹고, 그 외의 모든 생리용품을 서랍에서 치웠다.
이 도전의 핵심은 단순히 용품의 개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이는 나 자신이 ‘불편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 실험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내 몸은 컵에 익숙해졌다. 이전보다 더 편하고 자유로워졌다. 매번 갈아야 했던 생리대나 탐폰과는 달리 몇 시간 동안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꽤 큰 해방감이었다.
물론 이 방식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건 아닐 수 있다. 나에게는 스스로의 감각을 기준으로 삶을 조정하는 연습이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물건은 줄고, 불편은 예상 밖 – 체감한 변화들
생리컵 하나로 살아본 3개월은 생각보다 훨씬 단순했고, 훨씬 더 가벼운 생리주기를 만들어줬다. 일단 내가 사용하는 생리용품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이 있었다. “다음 달엔 뭘 사야 할까?”, “이번엔 어떤 게 더 좋을까?” 같은 질문은 사라졌다.
더불어 생리용품 보관 공간도 줄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생리 기간 중 짐도 반 이상 가벼워졌다. 외출 시엔 단 하나의 파우치도 필요 없었다. 내가 처음 걱정했던 ‘새거나 불편하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도 대부분 해소됐다. 오히려 일정한 루틴이 생기며 더 편해졌다.
물론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세척 타이밍이나 착용 시간 등을 스스로 체크해야 했다. 또한, 몸이 적응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불편조차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니 오히려 내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리를 할 때마다 느껴지던 ‘해야 할 관리’에서 ‘그냥 흘러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의 인식 변화가 컸다.
이 변화는 단순히 실용적인 편의성에 그치지 않았다. 내가 생리 중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의식의 재구성으로 이어졌다.
몸과 마음의 정리: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연습
이 3개월의 실험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더 많이 갖는’ 방식이 늘 옳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종종 불편을 제거하려고 너무 많은 대안을 만들어내지만 정작 그 대안들이 또 다른 불편을 만든다. 생리컵 하나로만 지내는 동안, 나는 불편을 완전히 없애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됐다.
불편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불편과 나 사이의 거리가 달라졌다. 생리는 불편한 게 맞다. 하지만 그 불편을 덮기 위해 물건을 더 살 필요는 없다는 걸 배웠다. 미니멀리즘은 내가 가진 물건의 수를 줄인 게 아니라, ‘불편을 받아들이는 기준’을 다시 설정하게 만든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한 가지 제품만 사용한다’는 제한은 나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조건이 되었다. 더 이상 비교하지 않아도 되고, 매달 달라지는 신체 반응에 더 민감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내 몸을 존중하는 방식이자 루틴으로 이어졌다.
결국 이 경험은 단순한 생리 용품의 변화가 아니다. 이는 나의 생활 철학과 가치관이 구체적으로 적용된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덜 가졌더니 더 편해진, 생리와 나의 관계
한 가지 생리용품만 사용하는 미니멀리즘 실험은 단순히 ‘생리대 줄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매달 반복되던 복잡함을 해소하고, 내 몸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우리는 생리를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 너무 많은 물건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진짜 필요한 것은 ‘자신에게 맞는 최소한의 기준’을 찾는 일이었다.
불필요한 걱정, 과잉의 소비, 비교와 불안으로 가득 찬 선택들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에게 맞는 한 가지에 집중했을 때 비로소 생리가 가볍고, 단순하고, 자연스러워졌다. 미니멀리즘은 이렇게 작고 민감한 영역까지 바꿔 놓을 수 있다.
이 도전 이후로 나는 생리를 더 이상 ‘관리해야 할 번거로움’으로 여기지 않게 됐다. 덜 가졌지만, 더 많이 자유로워졌고, 더 나답게 생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작은 실험을 통해 내가 내 몸을 더 신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적은 것으로도 충분히 나를 돌볼 수 있다는 깨달음은 삶 전반에 확신을 주는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