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 100개로 살아본 30일 – 실제 도전기
미니멀리즘, 생각이 아닌 삶이 되어버린 순간
나는 언젠가부터 '정리, 정리함' 등을 검색하고 있었다. 유튜브 속에서 잘 정리된 발코니의 모습을 보면서 희열을 느끼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작은 원룸이 답답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리적인 좁음보다 더 답답한 건 내 마음이었다. 퇴근 후 아무 생각 없이 널브러진 물건들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이게 정말 내가 선택한 삶이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피곤한 마음에 정리하지 않고 퇴근하고 난 우리 집을 보면 정신이 없었던 적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물건 100개로 살아보는 실험을 제안한 외국 유튜브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흥미로웠다. 동시에 무서웠다. 나는 지금 몇 개의 물건과 함께 살고 있는 걸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건들 속에서 정작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도전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나는 내 삶을 되찾기 위한 프로젝트로, 30일 동안 물건 100개만 가지고 살아보는 미니멀리즘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100개를 세는 순간, 현실은 숫자보다 냉정했다
처음으로 한 일은 모든 물건의 수를 세는 것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물건이 집 안에 있었다. 티셔츠만 12벌, 단체로 맞추었지만 한 번도 입지 않는 맨투맨만 3벌, 스마트폰 케이블이 4개, 사용하지 않는 머그컵이 7개. 충격이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걸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 쌓아두고 있었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기준을 세웠다. 최근 1개월 이내에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무조건 제외. 예쁜 옷이어도 1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은 제외. 감정적인 판단은 배제하고, 기능성과 실질적인 필요만 남기기로 했다. 그 기준으로 추리다 보니, 정말로 내 삶에 필요한 물건은 생각보다 적었다. 100개 안에 넣기 위해 노트북 전용 마우스를 포기하고, 책은 3권만 남겼다. 옷은 다 합쳐 15벌. 셀카봉과 블루투스 스피커는 안녕이었다. 색깔이 예뻐서 구매했지만 나와 톤이 맞지 않아 쓰지도 않았던 섀도와 블러셔는 이 기회로 버릴 수 있었다.
물건 100개를 제외한 버림은 해방이었다
물건을 버리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추억이 담긴 것들을 정리할 때 마음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나는 정리를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 물건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가, 아니면 과거에 묶어두는가?” 그러자 이상하게도 버리는 일이 두려움이 아닌 해방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정리의 기준은 ‘비우기’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특히 마음이 가장 가벼워졌던 건, 책상 서랍 속에서 원하는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받았던 배지,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받게 된 회사 기념품을 버렸을 때였다. 그건 단지 볼펜과 포스트잇이 아니었다. 내 안의 미련과 후회까지 정리하는 느낌이었다. 버림을 통해 나는 과거에 붙잡힌 감정과도 이별할 수 있었다.
물건 100개의 공간이 바뀌니 루틴도 바뀌었다
물건이 줄어들자 내 일상도 함께 변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아침 루틴이었다. 이전에는 어떤 옷을 입을지 매일 아침 고민하다가 지각하는 일이 잦았지만, 지금은 선택지가 적어 고민 자체가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졌고, 하루의 시작이 더 가볍고 단정해졌다. 청소도 훨씬 간단해졌다. 물건을 옮겨가며 먼지를 닦을 필요가 없어졌고, 바닥에 아무것도 없으니 물걸레질도 2분이면 끝났다. 물건이 적다 보니, 하나하나의 위치를 정확히 기억하게 되어 필요한 물건을 찾는 데 드는 시간도 눈에 띄게 줄었다. 정리함도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예전에는 너무 많은 물건을 숨기기 위해 다양한 수납함을 계속해서 구매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정리함들마저 모두 정리해 버렸다.
내가 가진 물건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니, 숨기려는 정리가 아닌 '보이는 정돈'이 가능해졌다.
처음엔 이런 변화가 불편할 줄 알았다. 하지만 단순함은 오히려 나에게 여유를 선물했다. 남는 시간을 활용해 필라테스를 시작했고,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해지니 음악 대신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조용한 산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삶의 리듬 자체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외출할 때마다 예뻐 보이는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하곤 했고, 그렇게 쌓인 소비로 인해 말일이면 항상 통장이 텅 비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물건을 사기 전에 반드시 생각한다. "이건 정말 필요한가?", "내가 정해놓은 100개의 물건 안에 들어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그 결과, 물건보다 나의 미래와 성장을 위한 가치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미니멀한 물건이 불러온 감정의 변화
이 실험을 시작하기 전엔 “이게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심이 컸다. 하지만 30일이 지나자 나는 깨달았다. 이건 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다는 걸. 삶의 주도권을 내가 갖고 있다는 확신은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줬다. 친구들은 “그걸 왜 버렸냐?”, “그럴 거면 애초에 왜 샀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환경오염 아니냐?”는 지적도 들었다. 나 역시 이 부분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결국 이 실험은 ‘버림’이 아닌 ‘반성’의 과정이었다. 물건을 잘 버리는 것보다, 잘 고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제 예전처럼 소비하지 않는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이걸 30일 동안 써야 한다면?”이라는 질문을 한다. 그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100개의 물건이 알려준 건 ‘내가 누구인지’였다
물건을 100개로 제한한다는 건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덜어내는 작업이었고, 나를 다시 정의하는 과정이었다. 처음엔 불안했고, 중간엔 후련했으며, 마지막에는 고요했다. 정리된 공간에서 혼자 앉아 있던 어느 저녁,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이 내가 바라던 삶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미니멀리즘은 내 삶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크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30일은 내 남은 인생을 더 단순하고 분명하게 살아가게 할 출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