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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스타일 -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과 공휴일 – 특별한 날을 비우는 법

공휴일이 꼭 ‘채워져야만’ 의미가 있을까?

 공휴일이 다가오면 우리는 자연스레 무언가를 계획하게 된다. 가족 모임, 여행, 쇼핑, 외식 등 평범한 일상보다 ‘더 특별한’ 무엇인가로 하루를 가득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긴다. 하지만 내가 미니멀리즘을 삶에 들이기 시작하면서, 공휴일을 대하는 자세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특별한 날일수록 ‘비우기’를 선택했다. 이것은 단순히 계획을 줄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가’를 정확히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

공휴일은 단지 휴식의 날이 아니라, 삶의 전체 구조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그 틈이야말로 내가 나를 다시 돌아보고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글은 내가 실제로 겪은 미니멀한 공휴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비워냄이 가져다준 여유와 그 속에서 얻은 진짜 충만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공휴일은 내 삶의 방향을 묻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따라, 삶 전체의 밀도는 달라질 수 있다.


미니멀리즘과 공휴일

공휴일에 ‘해야 할 일’에서 벗어나기

 예전의 나는 공휴일마다 일정을 가득 채웠다. 친구들과의 약속, 쇼핑몰 나들이, 명소 방문, 가족 단위의 외식 등을 계획했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기에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쉬는 날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오히려 더 피곤해졌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을 받아들이고 나서 가장 먼저 실천한 변화는 ‘공휴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을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공휴일을 맞았다. 스마트폰 알람을 끄고, TV도 켜지 않았다. 또한, 외출 계획도 일부러 잡지 않았다. 조용히 커피를 내려 마시고, 바닥에 앉아 햇살을 느끼고,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을 천천히 펼쳤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점점 편안해졌다. 내가 해야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그 자유로움은 어떤 일정보다 값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해야 할 것 없는 날’을 나 자신에게 정기적으로 선물하고 있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날은 여전히 특별하게 기억된다. 공휴일을 복잡하게 채우려 하지 않자 오히려 나 자신을 더 정직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그건 곧 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가족과 보내는 미니멀한 공휴일의 방식

 가족과 보내는 공휴일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아이를 데리고 놀이공원이나 키즈카페를 갔다. 또는, 수영장이나 공원 등 바깥 활동을 통해 ‘시간을 채우는 것’에 집중했다. 하지만 돌아오면 늘 피곤했고, 아이도 기분이 들쭉날쭉해지는 일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해 추석 연휴, 나는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되 ‘소란스럽지 않게’ 보내보자고 결심했다.

아침엔 온 가족이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각자 편한 공간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조용히 글을 썼고, 아이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으며, 남편은 음악을 들었다. 오후에는 동네 뒷산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 집에 와서는 간단한 재료로 함께 저녁을 만들었다. 놀라웠던 것은 무엇을 했는지보다 어떻게 함께 있었는지가 더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충돌도 없었고 에너지도 오래 지속될 수 있었다. 조용한 시간 안에서 각자의 취향과 방식으로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날을 통해 가족 시간은 반드시 크고 요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공휴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고 단순하게 정리하자 오히려 관계가 더 깊어졌다.

물건 대신 순간을 남기는 선택

 공휴일은 종종 소비를 부추긴다. 시즌 한정 세일, 기념일 할인, SNS 속 ‘가성비 나들이 추천 리스트’는 우리에게 ‘지금 무언가를 사야 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어딘가를 가야 한다’는 강한 신호를 준다. 나 역시 한때 공휴일을 기념하는 방법으로 무언가를 사는 것에 익숙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물건들이 내게 남겨준 감정보다는 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5월 황금연휴, 나는 가족과 함께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 나들이를 떠났다. 집에서 가까운 호숫가에 돗자리를 폈고, 집에서 싸 온 김밥을 나눠 먹으며 오후를 보냈다. 핸드폰은 거의 꺼둔 채 나무 그늘 아래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는 그 시간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날 나는 소비가 아닌 ‘경험’을 남기기로 선택했다. 그것은 그 어떤 쇼핑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순간의 공기는 사라졌지만, 그 때 느꼈던 감정은 지금도 남아 있다. 나는 특별한 날을 소비로 채우는 대신 순간을 곱씹는 여유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휴일을 기념하는 가장 미니멀한 방법은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진심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공휴일에도 ‘일상’을 유지하는 힘

 많은 사람들이 공휴일을 일상과는 완전히 다른 날로 생각한다. 물론 비일상적인 요소가 주는 즐거움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그것은 공휴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평소의 루틴을 버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평소처럼 차를 마시고, 평소처럼 글을 쓰고, 평소처럼 산책을 하면서 충분히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공휴일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짧은 명상 후 커피를 내리는 나만의 루틴을 유지한다. 그날이 명절이나 대체 공휴일에 관계없이 ‘내 삶의 템포를 지키는 것’이 내게 더 큰 안정감을 준다. 외부 요인이 아닌 내 내부 리듬에 맞춰 하루를 보내니 공휴일이 내 삶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더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루틴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의미한 반복’이 아니라, 오히려 내 삶의 균형을 지키는 일이다. 공휴일이라고 해서 특별한 이벤트로 리듬을 깨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지켜내는 일상을 이어가는 것이 진정한 자기 돌봄이었다. 나에겐 공휴일이 더 이상 ‘쏟아부어야 할’ 날이 아니라, 존중해야 할 내 일상의 일부가 된 것이다.


특별한 날을 비워야 진짜 나를 만난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삶이 아니다. 나에게 미니멀리즘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가 아닌 ‘무엇을 지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삶의 방식이다. 공휴일을 비워내기로 한 결정은 처음엔 낯설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빈 공간이 내 안의 진짜 필요와 감정을 마주하게 해 주었다. 소란스러운 계획 대신 여백을 만들자 그 안에서 고요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다.

공휴일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멈춤의 기회’이다. 꼭 뭔가를 해야 의미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다운 시간이 생긴다. 나의 공휴일은 더 이상 특별한 무엇으로 꾸며진 날이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진짜 특별한 날이 된다.

그리고 그런 비움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삶의 본질을 다시 붙잡는 시간이기도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특별한 날을 비우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 안에 진짜 나답고 깊이 있는 삶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