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가진 물건일까, 그 이상일까
오래전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자기소개를 할 때면 늘 직업이나 거주지, 소지품 같은 외적인 요소에 의존하게 되었다. 나의 내면이나 가치관 등 그 이상을 말하려 하면 당황스러웠다. 나는 나의 옷장, 책상, 스마트폰, 지갑 안의 카드들, 노트북에 깔린 앱들로만 이루어진 사람일까?
그렇게 생각하던 어느 날, 우연히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고, 조금씩 물건을 줄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지 공간을 깔끔하게 만들기 위한 정리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감정이 찾아왔다. 물건이 줄어들수록 오히려 내 안의 어떤 것이 더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내 감정, 생각, 취향, 철학 같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나는 물건을 줄이면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에 진심으로 처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미니멀리즘이 단순한 소비 절제가 아니라,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될 수 있었던 과정을 나의 경험을 통해 풀어보려 한다.
물건은 때때로 내가 아닌 것을 대신 말해준다
나는 예전엔 ‘무언가를 갖고 있어야 더 나답다’고 믿었다. 고급 펜, 디자인이 세련된 이어폰, 출판되지 않은 책까지도 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일부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나를 처음 방문했을 때, 내 방을 보면 나에 대해 무엇인가 느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대부분 내가 되고 싶은 모습, 혹은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의 껍데기에 가까웠다. 물건이 많아질수록 오히려 진짜 나는 어디 있는지 점점 흐려져 갔다.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알고 보면 광고나 유행에 끌려 선택한 것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또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쌓일수록 정작 나라는 존재의 감각은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다가 몇 년 전 산 디자인 서적을 발견했다. 당시 나는 그 책을 소유함으로써 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사람처럼 느껴지고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읽지 않아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건 단지 내가 되고 싶었던 인물의 환영일 뿐이고 지금의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그 책을 내놓은 후, 방이 비워진 것보다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생각했다. 나는 과연 어떤 물건이 없어도 여전히 나일 수 있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물건 정리가 아니라 자기 이해의 첫 시작이었다.
없어진 것들 속에서 진짜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은 늘 ‘더하기’를 통해 자기 모습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한다. 학력, 커리어, 옷차림, 취미, 소비까지 말이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는 대학교 학력이 추가되었고 취직한 이후에는 회사명이 추가되었다. 이후 구매하게 된 명품들을 가지게 되면서 내 소개에는 명품들이 더해졌다. 나 역시 무엇을 더하느냐로 내가 완성된다고 믿었다. 그런데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삶의 많은 것들을 덜어냈을 때, 오히려 없어진 것들 속에서 진짜 나라는 사람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허전했고 불안했다. “이걸 버려도 괜찮을까?” “이게 없으면 내가 나 같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나’였지, 실제의 나는 아니었다.
한동안 소셜미디어를 끊고, 패션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았다. 또한, 더 이상 새로운 제품을 비교하거나 명품을 소비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삶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 고요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감정에 자주 머무는지, 어떤 리듬으로 움직이는지, 어떤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를 처음 또렷이 인식하게 됐다. 그전까지는 바깥에서 끊임없이 들어오는 정보들에 반응하느라 내 속도를 느낄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알게 되었다. 진짜 나는 '무엇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이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감정, 감각, 생각들의 집합체라는 것을. 미니멀리즘은 그렇게, 없어진 것들 사이에서 오히려 가장 단단한 ‘나’를 만나게 해주는 반전의 경험이었다.
불편함을 받아들이자 진짜 내가 보였다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가장 의외였던 것은 편안함을 잠시 포기해야 진짜 나와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전의 나는 늘 편리하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했다. 언제든 음식을 배달시켜 먹고, 기분이 우울할 땐 인터넷 쇼핑으로 기분을 달랬다. 하지만 물건을 줄이고 소비를 멈추자 그런 즉각적 위안들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불편함과 공허함이 고스란히 남았다. 처음엔 그 감정들이 버티기 힘들었지만, 결국 나는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기로 했다.
한 번은 카페인을 줄이기 위해 집에서 커피 머신을 치웠던 적이 있다. 평소 아침 루틴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당연했던 나에게 그 빈자리는 큰 불편함이었다. 하지만 몇 주 후, 나는 그 시간에 간단한 스트레칭과 일기 쓰기를 자연스럽게 시작했고, 놀랍게도 그 하루의 시작이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불편함 속에 있던 감정과 습관, 그리고 진짜 나의 욕구가 그제야 드러났다. 나는 편안함 뒤에 숨어 있던 나의 본성을 처음 제대로 바라본 셈이다. 미니멀리즘은 편리함을 포기하고 마주한 불완전한 내 모습조차도 수용하게 만든 계기였다.
덜어낼수록 존재감은 선명해진다
처음 미니멀리즘을 시작했을 때, 나는 무엇이 남을까 두려웠다. 빈 공간이 불안했고, 뭔가 손해 보는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덜어낸 후 남은 공간이 나를 더 강하게 드러냈다. 물건이 줄자 말이 줄었고, 말이 줄자 내 생각이 정리되었다. 내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자극에 예민한지, 어떤 순간에 진짜 행복을 느끼는지 명확해졌다. 결국 물건은 나를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흐리게 만드는 안개였던 셈이다.
특히 책상 위의 물건을 줄인 후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 큰 전환점이었다. 이전에는 항상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비워진 책상 위에 노트북 하나만 올려두니 집중력이 몰입되었고, 마음이 확실히 가벼워졌다. 그 후 나는 주말마다 짧은 에세이를 쓰는 습관을 들였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복잡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비로소 나의 목소리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자각은 어떤 고가의 물건보다도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미니멀리즘은 '나'로 돌아가는 가장 단순한 길
우리는 종종 자신을 찾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배운다. 심지어,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체성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과정에서 더 분명해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물건을 줄이면서 진짜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알게 됐다. 그것은 단순한 정리 정돈이나 공간 미학이 아니라, 내면의 구조를 정비하는 작업이었다. 미니멀리즘은 나에게서 불필요한 감정, 타인의 시선, 자격지심, 허영심을 제거했고, 그 자리에 가볍고 정직한 나 자신을 남겼다.
물건을 버리는 순간마다, 나는 나에게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결국 나는 내 소유물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감정, 내가 선택한 행동, 그리고 내가 사랑한 순간들로 이루어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은 그렇게 나를 바깥이 아닌 안으로 이끄는 길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가 누구인지 조금 더 정확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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