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과 인간관계의 ‘거리두기’ – 덜 친하니 더 편하다

Simpinfo 2025. 7. 2. 23:50

사람 사이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사람을 많이 알아야 세상에서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락처 목록이 많고, 약속이 빼곡히 잡힌 주말이 자랑처럼 느껴지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그런 관계들이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소중한 사람보다는 소모적인 관계가 더 많다는 걸 느꼈다. 또한, 어떤 대화는 만나기 전부터 피곤함이 앞섰다. 미니멀리즘을 삶에 도입하면서, 나는 단순히 물건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물건은 주로 눈에 보이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마음속에 남는다. 그래서 더 어렵고 더 지치게 만든다. 내가 직접 정리해보지 않으면 결코 줄어들지 않는 감정적 부채가 쌓여가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이다. 이 글에서는 내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인간관계에도 ‘비움’의 원칙을 적용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관계를 줄였을 때 오히려 마음이 더 자유로워졌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거리 두기와 미니멀리즘 사이의 관계

관계에도 ‘정리 기준’이 필요했다

 물건을 정리할 땐 ‘이 물건을 구매하면 설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인간관계를 정리할 땐 그보다 더 섬세한 질문이 필요했다. ‘이 사람과의 만남은 내 감정을 소진시키는가, 채워주는가?’라는 기준이었다. 처음엔 나 자신이 너무 냉정해진 게 아닐까 걱정했다. 오랜 친구, 예전 직장 동료,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낸 지인. 연락이 끊기면 내가 무례한 사람처럼 보일까 두려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를 억지로 만나고 난 뒤 오는 피로감이 하루를 무력하게 만든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먼저 피로해지는 관계부터 차근히 정리해 보기로 했다. 연락을 먼저 하지 않고, 매달 의무처럼 이어지던 약속을 줄이고, ‘다음에 보자’는 말 대신 정중하게 거절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관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한 발 물러난 거리에서 더 건강한 감정이 생기기도 했다. 결국 중요한 건 물리적인 거리보다 정서적인 호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덜 친하니 오히려 대화가 더 편해졌다

 우리는 종종 ‘더 친할수록 모든 걸 공유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을 삶에 적용하면서, 나는 가까운 사이에도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선’이 존재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모든 관계가 깊을 필요는 없고, 모든 대화가 진지할 필요도 없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달라졌다. 특히 회사나 동호회처럼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변화가 컸다. 예전엔 불필요한 친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은 가볍고 선명한 관계를 지향한다. 얕은 대화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감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관계는 오히려 더 자유롭고 건강하다는 뜻이다. 덜 친하니 감정이 덜 소모되고, 그래서 더 오래갈 수 있는 관계가 된다. 나 또한 이런 거리감 속에서 오히려 인간관계가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걸 체험했다. 진짜 친밀감은 반드시 밀착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람보다 나 자신을 먼저 초대해야 했다

 관계를 정리하다 보면 처음엔 주변이 휑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까지 나도 그렇게 느꼈다. 이전에는 누군가와 늘 연락하고 있어야 마음이 안정됐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 불필요한 관계가 정리되고 나서, 갑자기 하루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엔 낯설고 허전했으며 SNS 속에서 친구들을 많이 만나는 사람들을 보며 내 자신을 부정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미루던 독서를 하고, 오랫동안 놓았던 취미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에 몰입하게 되었고, 10년 넘게 배우지 못한 필라테스도 다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취미생활과 공부를 하면서 나는 내가 사람 사이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맞추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만나는 일이 훨씬 소중하고 충만한 시간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이 무서워서 관계를 쌓았지만, 실제 외로움을 해소해준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내 안의 시간이었다. 더 나아가, 내 자신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존감도 키울 수 있었다. 인간관계의 비움은 나를 향한 초대였고, 조용한 일상에서 비로소 내 감정과 욕구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진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명확히1245 알 수 있게 되었다.

친밀함은 강도가 아니라 호흡의 리듬이다

 과거에는 좋은 관계라는 것을 서로 모든 걸 알고, 자주 만나고, 끊임없이 연락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좋은 관계는 거리를 두어도 여전히 연결되어 있는 관계라고 믿는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고, 말없이 지내는 시간에도 편안한 감정을 유지할 수 있는 관계가 더 건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계에도 리듬이 있다. 호흡처럼 들이쉬고 내쉬는 간격이 자연스럽게 맞아야 오래간다. 그 균형이 맞지 않으면, 억지로 이어가는 친밀감은 결국 피로로 변한다. 미니멀리즘은 이 리듬을 회복하게 도와줬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내 삶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이것이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인간관계의 재정의였다. 덜 친한 만큼 편안한 거리, 그것은 관계의 종착지가 아니라, 오히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리였다.


적당한 거리는 오래도록 함께할 수 있게 만든다

 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물건을 줄이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삶을 가볍게 하기 위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였다. 인간관계에서도 이 방식은 유효했다. 처음엔 조금 냉정해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내가 지켜야 할 감정, 시간, 에너지를 위해 거리두기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사람을 덜 만난다고 해서 관계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오래도록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 그리고 진짜 인연은, 그 거리마저도 감싸 안을 만큼 단단하게 이어져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억지로 가까워지지 않는다. 그 대신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 덜 친하지만 더 편한 관계, 그것이야말로 내 삶을 지키는 가장 건강한 방식이 되었다. 앞으로도 이를 지속할 것이다.